2022년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에 출사표를 낸 사람들은 하나같이 국민을 잘 살게 해 주겠다며 수많은 공약을 내걸고 있다. 하지만 밤낮 교대 근무자들의 근로 환경 개선을 위한 공약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복지국가의 중요한 정책 중 하나는 근로자에 대한 정책을 마련하고 근로자들에게 최상의 복지를 실현시키는 일이 아닐까 한다.
필자가 근로자, 그중에서도 밤낮을 바꾸어가면서 일을 하는 사람들의 복지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의 건강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그 위험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워서다.
얼마 전 필자의 병원에 35세 남자 환자가 내원했던 적이 있었다. 환자는 두어 달 간 속이 불편했는데 위가 화끈거리고 따끔거리며 바늘로 찌르는 것 같다는 통증을 호소했다. 그런데 그 환자는 한 달 전에 다른 병원에서 위내시경과 복부 CT검사를 받았지만 별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필자의 병원에서 재차 위내시경 검사를 시행했으나 마찬가지로 별 이상은 없었다. 단지 심장 박동수가 분당 마흔다섯 번으로 느렸는데 심전도 상 단순 서맥이었고 혈압은 정상이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그 환자는 직업상 매일 주야 교대 근무를 8년간 해왔다는 것이다.
그 환자의 증상은 교대 근무와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물론 서맥도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필자는 그 환자의 사례를 계기로 주야 교대 근무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다.
밤낮을 바꿔가며 일하는 직종으로는 경찰관, 소방관, 경비, 택배 근로자, 응급실 의사, 간호사, 연예인 등이 있다.
근무의 유형은 짧은 시간이지만 야간 근무를 자주하는 경우, 간호사처럼 3부제로 교대해서 일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일일 교대, 일주일 교대, 한 달 교대까지 다양한 방식이 있다.
그런데 교대 근무자들은 대부분 근무 기간에 비례해서 건강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물론 개인별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교대 근무를 하게 되면 생체시계의 교란(Circardian Rhythm Misalignment)과 밤에 잠을 못 잘 때 겪는 수면조절장애(Sleep Deprivation)등의 나쁜 영향을 받게 된다.
생체리듬이란 사람이 햇볕을 받으면 생성되는 신체의 시간적 리듬으로 고유한 생체반응이다. 신체에서 분비되는 대부분의 호르몬은 이러한 신체 리듬에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잠을 자고 일어나고 먹고 소화하고 배설하고 운동하고 일하며 즐기는 모든 것들이 고유한 신체 리듬에 영향을 받는 것이다. 혈압이나 체온, 맥박 등도 신체 리듬에 의해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생체시계의 교란은 생체리듬이 깨지거나 조화를 잃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어 위에서 분비되는 식욕을 촉진하는 그렐린(Ghrelin)이라는 호르몬과 지방세포에서 분비돼 식욕을 억제하는 렙틴(Leptin)이라는 호르몬의 부조화가 입맛을 좋아지게 만들어 밤에 과식을 하게 한다.
게다가 야근을 할 때는 달고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섭취하는 경우가 많아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거기에 늦은 밤에는 운동도 거의 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건강을 저해하는 생활습관들은 대사증후군(Metabolic syndrome)이란 성인병을 만들어 낸다.
대사증후군은 비만으로 연결돼 2형 당뇨병이 생기게 되고 심혈관계 질환으로 이어진다. 또한 유방암, 대장암 등 각종 암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 질환에 걸릴 확률은 밤낮을 바꿔 일하는 사람들이 낮에 일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높다.
또한 여성의 경우는 생리 주기가 불규칙해지면서 생리불순과 무월경을 경험하게 되며 임신이 힘든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두 번째 수면조절장애(Homeostatic sleep deprivation)란 잠이 부족하면 더 자게하고 너무 많이 자면 뇌에서 조절하는 기능이 파괴되어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말한다.
성인의 하루의 적정한 수면시간은 7시간이다. 밤에 덜 자면 낮에라도 반드시 보충해야 한다.
하지만 밤과 낮이 뒤바뀐 근로자들은 7시간의 수면을 취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아침에 퇴근할 때 햇볕을 차단하는 선글라스를 쓰거나 잠자리에 들 때는 눈가리개와 귀마개를 를 해서 밤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밤 근무를 할 때는 낮에 30분에서 2시간가량 잠을 자두는 것도 방법이다. 또한 초저녁에 일할 때는 조명을 밝게 하거나 푸른 빛 렌즈의 안경을 쓰고 자정 이후에는 조명을 어둡게 하는 것이 좋다.
밤 근무 시에는 졸림을 방지하는 커피를 마시는 것도 좋다. 또한 Modafinil(Provigil)이나 Armodafinil(Nuvigil)이라는 각성제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중외제약에서 프로비질이라는 약이 시판 중이다.
이 약들은 원래 아무데서나 쓰러져 잠이 드는 기면증(Narcolepsy)이라는 수면장애에 사용하도록 허가되었다. 하지만 야간작업을 하는 근로자에게 효과가 있기 때문에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잠을 안 자고 공부하려고 각성제로 습관적으로 복용하게 될 경우 위험성이 높다.
교대 근무를 하는 경우에는 밤에 근무하다 낮에 근무하게 되면 불면증을 겪게 된다. 이때는 일반 수면제보다는 멜라토닌(Melatonin)이 부작용이 없어서 좋은데 의사의 처방을 받으면 쉽게 살 수 있다.
밤낮이 바뀌면 졸린 상태에서 일을 하게 되기 때문에 사고의 위험이 매우 높다. 직장에서 작업 중에 일어나는 사고도 있지만 아침에 퇴근할 때 졸음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의 위험도 크다.
이때 무조건 근로자의 부주의만을 탓할 게 아니라 회사는 근로자들의 상태를 항상 살피고 야간작업 중에도 틈틈이 근로자가 쉴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또한 밤낮을 바꿔 일하는 이들은 낮 시간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사회 활동이나 가족 활동을 하지 못한다. 그 결과 우울증과 불안 신경증 등 다양한 정신적 질환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요즘 코로나19로 오랜 시간 사투를 벌여 온 의료계 방역 인력들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돌봐야 한다는 지적이 일면서 그들을 위한 대책이 하나, 둘씩 나오고 있다. 물론 그들도 밤낮이 바뀌어 일하는 부류에 속한다.
하지만 여전히 밤낮이 바뀐 삶의 터전에서 고된 시간을 버티는 대부분의 근로자들을 위한 대책은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질병은 치료하는 것보다 예방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하루빨리 그들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정부의 대책들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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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내과학 석사/박사(소화기내과전문의)
前 서울아산병원 소화기센터장
前 서울아산병원 검진센터 소장
現 서울아산병원 명예교수
명의(名醫) 700명이 추천한 국내 최고의 명의(名醫) 선정
대한건강증진학회,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 회장 등 다수 역임